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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은 관념이 아닌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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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흔히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은 정말 마음먹기에 달렸을까.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맞는 전제일까. 한국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이때,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KMA가 주최한 ‘수요일에 만나는 지혜의 향연’에서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의 차가운 진실을 이야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행복이라고 했다. 우리가 행복을 생각할 때 막연하게 떠오르는 그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즉 인생은 마라톤이고 열심히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최종 목적지인 행복에 도달하리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이것은 위대한 철학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사실이라고 보긴 어렵다. 직관적으로 지구가 평평한 것이 당연해 보였지만 팩트가 아니었듯 행복을 위해 산다는 것이 인문학적 스토리는 될 수 있어도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다. 따라서 행복에 대한 통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행복을 다시 조립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오래전부터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던 행복이 최근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특히 행복과학 분야의 권위자인 미국 심리학자 에드 디너는 행복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근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면 일반인에게 통념적으로 전해지는 행복에 관한 내용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막연히 행복은 세상 좋은 것에 묻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고급 아파트나 사회적 명성 같은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금가루처럼 행복 가루가 잔뜩 묻은 물건이나 경험을 가지면 된다고 여기고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행복이 세상 밖의 어딘가에 묻어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순간 행복의 본질을 놓치고 헛걸음을 딛기 시작한다. 행복은 뇌가 만들어내는 일종의 쇼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과는 빨갛고 바나나는 노랗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색맹인 사람은 한 번도 사과가 빨갛게 보인 적이 없다. 즉 색이란 시각 세포를 바탕으로 뇌가 조합해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이 우리가 살면서 듣고 싶어 하는 소리라면 뇌는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뇌가 임의로 이 소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먹는다고 행복해질까

    지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산 기간은 길게 잡아 600만 년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시간 속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문명 생활을 한 호모 사피엔스는 없었다. 조금 더 와닿게 600만 년을 1년으로 압축해 계산하면 인간이 문명 생활을 한 기간은 채 2시간도 되지 않는다. 
    즉 오랜 기간 인류의 관심사는 문명 생활이 아니라 생존과 재생산이었다. 당연히 인간의 뇌도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뇌라는 생존 지침서를 소유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셈이다. 
    뇌는 단백질로 만들어진 일종의 소프트웨어인데 생물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안, 경쟁, 스트레스, 외로움 등 행복을 방해하는 경험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따라서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되는 게 아니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뇌는 우리의 행복 증진에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행복이 뭘까. 고대 철학자들은 행복과 가치 있는 삶을 연결하곤 했으나 이것은 행복의 본질이 아니다. 행복의 본질은 바로 즐거운 경험이다. 인간은 고등한 뇌를 가지고 있어서 말초적인 것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스펙트럼이 크다. 배고플 때 뭔가 먹으면 즐겁고 추운 날 사우나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결국 행복이란 주관적으로 느끼는 신체적, 정신적 즐거움의 합이다. 그런데 수직적이고 유교적이며 형식적인 사회에서는 나만의 즐거움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보다 재미는 없어도 남들이 좋게 평가할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일이 잘 풀려 명함이 그럴듯해져도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한국인의 딜레마다. 
    반면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의 특성 중 하나가 주관적 즐거움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미 국가들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하지만 일상의 즐거움을 우선시한다. 이것이 꼭 권장할 만한 가치는 아닐지라도 절대 가볍게 생각해선 안된다. 나아가 이 즐거움이란 숱한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듯이 작심하고 결심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좋다’라는 느낌이 자주 켜지는 전구와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전구는 오래 켜지지 않는다. 객관적 조건으로 행복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뭔가 거창한 것을 갖게 되면 영원히 이 전구가 켜져 있을 거라 착각하지만 좋은 집이나 명성도 시간이 지나면 감흥이 사라진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커다란 한 방을 바라지 말고 전구가 켜지는 경험을 자주 해야 한다.




    외향적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

    행복감을 느끼는 데는 분명 개인차가 있다.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자주 행복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이는 어느 정도 유전적 요인과 관련 있다. 
    유독 행복 전구가 켜질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외향적이다. 행복 관련 수천 개의 변인 가운데 행복의 개인차를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인이 바로 외향성이다.
    편의상 성격 검사에서 외향성이 상위 30% 안에 든 사람들을 외향적이라 하고 하위 30%인 사람들을 내향적이라 한다. 두 집단의 일주일간 행복값 변화를 보면 패턴은 대개 비슷하다. 주초에 낮게 시작해서 수요일부터 상승 곡선을 타다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쯤 정점을 찍고 일요일에 뚝 떨어지는 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내향적인 사람이 가장 행복해하는 날과 외향적인 사람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날의 행복 수준이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결과는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외향적인 사람이 인생을 잘 살아서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외향적인 이들이 우연적인 요소로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외향적이면 사람을 많이 만나는데 이러한 행동 특성이 행복의 전구를 켜기 위한 조건에 잘 맞는다.
    외향적인 사람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 수준도 굉장히 높다. 넘어져 다치더라도 ‘이게 인생이야’라며 계속 움직이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과도하게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행복감이 높아지기 어려운데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물론 인생에서 외향적인 사람에게 불리한 부분도 있겠지만 행복만 이야기할 때는 외향성이 유리하게 작용하는 게 사실이다.
    한편 인간은 예로부터 자신을 고등한 존재로 생각해서 ‘행복이 삶의 최종 가치이자 목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대전제는 최근 심리학 연구에서 재해석되고 있다. 인간이 뛰어난 두뇌를 가진 건 사실이나 본질적으로 똑똑한 동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틀에서 보면 행복이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물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생각이 아닌 경험이다. 인간의 감정이 굉장히 복잡할 것 같지만 단순하게 보면 ‘쾌’와 ‘불쾌’의 경험으로 나뉜다. 재밌고 즐겁고 신나며 기대되는 감정들이 ‘쾌’에 속할 것이고 싫고 역겹고 짜증 나는 감정은 ‘불쾌’에 속할 것이다. 
    뇌는 이 두 가지 신호를 지속해서 켰다 끈다. 즉 감정이란 생존에 필요한 수많은 결정을 할 때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신호다. 가령 불쾌한 감정은 생존에 위험이 될 수 있으니 멈추거나 물러서라고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브레이크나 후진 기어 같은 장치다.
    그러나 뇌의 작동이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그쳐선 안된다. 생존에 필요한 여러 자원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 ‘쾌’로 즐거움이 묻은 모든 감정적 경험이 이에 해당한다. 결국 행복은 특별한 게 아니라 수많은 일상에서 얻은 ‘쾌’ 경험의 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 중독된 뇌

    음식은 인간의 오랜 생존 필수품이다.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먹는 즐거움을 추구해 왔는데 그만큼 먹는 즐거움을 이기는 것이 없다. 옛날에 인간은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3박 4일을 쫓아다녀야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사냥한 고기를 먹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고 그걸 잊지 못해 다시 사냥하러 나섰다. 이러한 강화가 없다면 힘들여 사냥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식탐이 있는 인간이 살아남았다.
    인간은 지금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올라선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특별히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은 인간이 단시간에 꼭대기로 점프한 계기가 있는데 바로 타인을 통해 생존, 자원, 재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던 매머드 사냥을 12명이 함께한 후 분배했고 협동해서 망을 보며 사자의 공격을 피했다. 이는 호모 사피엔스만이 이룬 혁명이다. 나약한 인간은 타인을 도구로 삼으며 막강해졌다.
    그렇다면 거꾸로 슈퍼맨이 된 인간이 다시 별 볼 일 없는 존재가 되는 건 언제일까.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즉 사회적으로 고립될 때다. 인간의 뇌가 가장 공포스러워하는 게 고립과 따돌림이다. 그래서 SNS에서 자신이 사회적 존재로서 가치 있음을 계속 어필한다.
    지금 우리는 화려하고 세련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속성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의학적으로 가장 많은 사망 요인은 암이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회복할 확률도 떨어진다. 최근 논문들에서도 혼자 되는 것의 위험을 경고한다. 65세 이상이 되면 고립이 과음, 과식, 흡연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 통계를 새로운 각도로 돌리면 결국 현대인의 가장 큰 총체적 사망 원인이 사회적 고립임을 알 수 있다. 사회적 고립의 위험을 막기 위해 인간의 뇌는 사회적 고통을 느끼게 한다. 고통을 느끼는 것도 능력이다.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뇌가 보내는 경고음을 바탕으로 우리는 진통제를 먹거나 치료를 받는다. 만약 손가락이 잘려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인간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증명된 실험이 있다. 최근 심리학 연구에서 연인과 이별하거나 가족과 싸우는 등 사회적 고통을 당했을 때 똑같은 뇌 부위에서 신호가 울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뇌 입장에서는 발을 다치든 사회적 문제가 생기든 고통의 디테일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생존에 위험이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뭔가 조처를 하게 하는 것이다. 실연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타이레놀을 먹고 나서 고통이 유의미하게 줄었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인간도 결국 생물학적 기계임을 알 수 있다.




    스치는 타인과의 즐거운 경험

    행복은 뜬구름 잡는 개념이 아니다. 생물학적인 정서 시스템 안에 있는 것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속성상 가장 중요한 경험이 사회적 경험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사람은 양가적 자극과 같아서 즐거움과 의미를 주기도 하지만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따라서 양질의 사회적 경험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자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인간관계를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로 나눠서 본다. 강한 유대가 가족이나 연인, 친한 친구처럼 아주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라면 약한 유대는 일상에서 스치는 사람 혹은 회사에서 조금 알고 지내는 사람과의 관계를 말한다. 행복한 사회일수록 약한 유대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미묘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행복감을 좌우한다.
    한국 사회는 유독 강한 유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집단 안의 사람들에게만 쏟아부으니 바깥에서 스치는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내 가족은 끔찍이 챙기면서 집단 밖의 사람을 아군이 아닌 잠재적 경쟁자로 대하기도 한다. 이런 스트레스를 가지고 타인을 대하면 행복감이 높아지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실험이 있다. 영업이 끝나갈 무렵의 뷔페 디저트 코너에 아이스크림이 초콜릿맛 두 개, 바닐라맛 한 개가 남았다. 그리고 뒤에는 딱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떤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인가. 
    만약 아이스크림에 대한 특별한 취향이 없다면 초콜릿을 선택함으로써 뒤에 있는 사람이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줄 수 있다. 이러한 미묘함이 곧 배려이자 매너인데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이 부분이 최하위에 속한다.
    돌을 던지면 돌이 날아오고 꽃을 던지면 꽃이 날아오는 것이 인간 사회의 특성이다. 이것이 일그러지는 순간 모든 것이 얽히며 행복한 사회로 다가가기 어려워진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에게 행복이란 곧 양질의 사회적 경험을 자주 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예로 좋은 사람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이 쌓일 때 우리 뇌가 흥분하면서 행복 전구가 켜질 것이다.